범 종
조 지 훈
무르익는 과실이
가지에서 절로 떨어지듯이 종소리는
허공에서 떨어진다. 떨어진 그 자리에서
종소리는 터져서 빛이 되고 향기가 되고
다시 엉기고 맴돌아
귓가에 가슴속에 메아리치며 종소리는
웅 웅 웅 웅 웅……
삼십삼천을 날아오른다 아득한 것.
종소리 우에 꽃방석을
깔고 앉아 웃음짓는 사람아
죽은 자가 깨어 말하는 시간
산 자는 죽음의 신비에 젖은
이 텡하니 비인 새벽의
공간을
조용히 흔드는
종소리
너 향기로운
과실이여!
조지훈(1920-1968) 청록파 시인
1939년 모교 전신 혜화전문 입학
동국대 강사, 고려대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