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초상화. OSV |
1941년 7월 말, 14호 막사에서 한 명의 수용자가 탈주했다. 간수는 그를 잡아들이는 대신, 연대 책임을 물어 막사에 있는 수용자 10명에게 아사(餓死)형을 내렸다. 그런데 한 명이 처절하게 울부짖자 누군가 조용히 간수 앞으로 걸어나갔다. 죄수 번호 ‘16670’. 이름 없는 ‘수감자’였다. 그는 말했다. “제가 대신 죽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간수는 물었다. “너는 누구냐?” 그가 답했다. “저는 가톨릭 사제입니다.”
그의 이름은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했던 시절, 홀로코스트 참상이 벌어졌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유다인만 있지 않았다. 소련군 포로와 집시·동성애자·나치에 저항한 이들까지, 수많은 ‘생명’이 이곳에서 지워졌다. 폴란드인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는 유다인을 도왔다는 이유로 나치에게 체포돼 이곳에 갇혔다.
꼭 75년이 흐른 뒤인 2016년 7월 29일. 성 콜베 신부가 잔혹히 처형당한 차디찬 아우슈비츠 지하 감금시설에 다시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2016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본대회 중 성 콜베 신부를 만나러 온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수행원도 뒤로 물린 채 지하 감옥에 홀로 들어선 교황은 침묵 속에 한참이나 기도했다. 그 엄숙함에 누구도 작은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지금의 교황이 아비규환 속에 이웃을 위해 숨을 거뒀던 성인과 침묵 속에 대화하는 듯했다. WYD 시기 수많은 젊은이도 아우슈비츠를 방문했다.
교황은 지금 우리가 위대한 성인,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선조의 삶을 깊이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 생생히 보여줬다. 자리에서 일어선 교황은 단 두 마디만 남겼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이토록 잔혹함을 용서하소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6년 폴란드 오시비엥침에 있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죽음의 벽에 손을 대고 기도하고 있다. OSV
▲1945년 1월에 촬영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생존자들의 사진. OSV
교황의 침묵, 청년들을 움직이다
교황이 남긴 두 문장은 수백만 명의 젊은이를 울렸다. 그 수는 300만 명에 이른다. 그해 7월 26~31일 열린 2016 크라쿠프 WYD는 역대 최대 규모의 순례자가 참가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향한 여정에서 역대 WYD 개최지를 찾아 그 열매를 조명하는 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과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 공동기획 ‘개최지를 가다’. 폴란드 교회 두 번째 편은 ‘하느님 자비로 물든 교황과 청년들’이다.
WYD에는 젊은이들의 신앙 열기도 있지만, 아픔의 나눔도 있다. 집단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12명을 맞잡은 교황의 손, 침묵의 기도, 묵념. 교황이 크라쿠프 WYD에서 전 세계 젊은이, 특히 폴란드 교회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어떠한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픔 앞에 함께 서는 것, 교회가 고통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삶은 달라졌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마라!”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당한 600만 명 희생자 가운데 대부분은 유다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장은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유다인 공동체 안에서도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다.
크라쿠프 WYD를 계기로 바티칸 전문 기자가 된 월간지 ‘가장 중요한 모든 것(Wszystko Co Najwaniejsze)’의 미할 클로소프스키(35) 부편집장은 이 문구를 조금은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하되, 자비로우십시오”라고. 당시 WYD 자원 봉사자로도 활동했던 클로소프스키 부편집장은 파견미사 후 교황과 만났다. 역대 교황들은 WYD가 끝나면, 헌신했던 자원봉사자들과의 만남을 따로 가져왔다.
교황은 당시 봉사자들에게 “역사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대 간의 연결, 즉 기억을 전달해 역사를 세대 간 전달하는 방식 역시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젊은이들에게 아픔의 역사를 잊지 않고 반추해 함께 나아가야 함을 거듭 요청한 것이다.
교황의 당부를 마음에 새긴 클로소프스키 부편집장은 cpbc와의 인터뷰에서 “선조들이 경험한 역사와 기억도 중요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위에 하느님 자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라며 “우리는 기억으로부터 배우되, 주님의 자비로 미래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앞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교황 또한 폴란드인과 독일인으로서 상징적인 장소인 아우슈비츠를 찾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은 전 세계인에게 더 큰 울림을 선사했다. 모든 젊은이에게 어떠한 고통 속에도 화해와 용서, 자비의 마음의 중요성을 심어준 것이다.
클로소프스키 부편집장은 “이웃을 대신해 자기 목숨을 바친 성 콜베 신부의 희생은 하느님의 자비를 그대로 보여줬고, 그보다 더 자비로운 모습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그것도 세계 젊은이들이 모인 WYD 도중에 죽음의 수용소 한복판에서 우리를 위해 슬퍼한 사실은 폴란드 젊은이와 전 세계인에게 매우 큰 의미로 다가왔다”고 회상했다.
폴란드에는 여전히 나치 독일의 피해자들이 곳곳에 살고 있다. 그리고 독일에도 나치 정권에 가담한 이들이 살아있다. 그러나 클로소프스키 부편집장은 “오늘날 폴란드와 독일은 국가 간 관계를 잘 다지며 지내고 있다”면서 “우리는 폴란드와 독일의 수도인 바르샤바와 베를린을 연결하는 고속열차를 만들고, 이것이 경제적 엔진이 되어 유럽연합에 동력을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역사 위에 세우되, 자비로워야 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었다.
클로소프스키 부편집장은 “자비로 인해 우리는 상처를 넘어 더욱 위대하고 좋은 가치, 희망을 건설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며 “한편으론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상처를 딛고 나아가려는 폴란드인들의 현실을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0년 7월29일 폴란드 오시비엥침에 있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죽음의 벽에서 생존자를 만났다. OSV
클로소프스키 부편집장은 미국 콜로라도에서 고고학자로 일하다 크라쿠프 WYD때 커뮤니케이션부 봉사자로 참여했다. 교황과의 만남을 계기로 2019 파나마 WYD, 2023 리스본 WYD에도 봉사자로 참여한 뒤 가톨릭 언론인이 됐다. 가톨릭 신앙의 가치를 깊이 실감하며 삶에 변화를 맞은 것이다.
“크라쿠프 WYD에서 공식 웹사이트의 편집자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특권이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질문하고 진실을 찾으려 한 여정을 통해 가톨릭교회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것이 제 소명이라고 분명히 느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성소라고 믿습니다.”
▲2025년 12월 12일 크라쿠프교구 청소년사목국의 청년 피정 ‘구시가지의 그리스도’에 참여한 청년들.
그날을 기억하는 또 다른 청년들
크라쿠프 WYD의 생생한 기억을 간직한 청년들은 더 있다. 2025년 12월 12일 크라쿠프 외곽의 한 피정의 집. 피정의 집 이름은 ‘Totus tuus’로, ‘모든 이의 모든 것’이라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모토를 그대로 붙였다. 청년 피정 ‘구시가지의 그리스도’는 2012년부터 시작됐지만, 크라쿠프 WYD를 계기로 더욱 활발히 이어오고 있다. 이날 피정에 참가한 10여 명의 젊은이 중 절반은 WYD에 참가한 이들로, 요한 복음 속 ‘사랑’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나누는 시간을 이어갔다.
아르카디우스 마르제츠(39)씨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16년 7월 30일 밤샘기도에서 강론하시는 모습을 자전거를 타고 가다 들었다”며 “그 유명한 ‘소파에서 일어나라’는 메시지였는데, 다시 들여다보니 ‘자신의 길을 가라. 하느님이 부르신 것을 하라’는 말씀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 메시지는 크라쿠프 외곽 브제기(Brzegi)에 조성된 ‘자비의 캠퍼스’에서 열린 WYD 밤샘기도 때 교황이 전한 말로, 교황은 젊은이들에게 “소파에서 감자 칩을 먹으며 TV만 보는 일상에서 벗어나 일어나라”고 독려했다. 마르제츠씨는 “당시엔 ‘자신의 길을 가라’는 의미를 ‘자전거를 계속 타고 가라는 거군’ 정도로만 여겼는데, 이후 나눔을 통해 메시지를 다시 성찰해보니 진정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면서 “인생 전체가 하느님께로 향하는 여정이라 생각하면서 WYD 이후 피정에도 꾸준히 참여하며 교회 가르침을 더 깊이 나누고 있다”고 밝혔다. “소파에서 일어나라”는 교황의 말은 안락함에 머물지 말고, 세상의 고통 속으로 나아가라는 요청이었다. 곧 ‘자비를 실천하라’는 강력한 호소였다.
실제 2016년 7월 26~31일 열린 본대회와 앞선 교구대회 기간 젊은이들은 소소한 자비를 실천하면서 ‘자비의 나라’라는 이름에 걸맞은 폴란드 청년들로 거듭났다. 미렉 크르지자크(36)씨는 WYD 기간 60㎡ 남짓한 방 두 개짜리 집에서 14명의 순례자에게 홈스테이를 제공했다. 크르지자크씨는 “브라질에서 온 순례자들, 독일에서 온 부부, 다른 지역에서 온 폴란드인들, 런던에서 온 친구까지, WYD 동안 저희 집은 정말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었다”며 “제 인생에서 그렇게 많은 기쁨과 사랑을 사람들로 받았던 시간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교구 도미니코회 학술사목 공동체 ‘베츠카’ 회원 줄리아 크시옹코(22)씨는 13살 때 크라쿠프 WYD를 경험했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집에 온 4명의 외국인 언니·오빠들과 나눈 대화와 신앙은 10대 청소년에게도 깊이 각인됐다. 그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다시 순례지에서 서로 만났고, 명절 때마다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크시옹코씨는 “저는 나이가 너무 어려서 대회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홈스테이를 통한 환대의 경험은 내면 깊은 곳에서 공동체에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며 “그런 이유로 이후 젊은이들이 신앙을 깊이 나누는 베츠카 모임에 참여하게 됐고, 여기서 주님 안에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지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폴란드 교회에 많은 신앙 공동체가 있지만, 베츠카의 장점은 젊은이 각자가 지닌 재능을 봉헌해 자비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크시옹코씨는 현재 사진 봉사를 하고 있다. 크시옹코씨는 “제 재능이 2023 리스본 WYD 때에도 순례자들을 촬영해주며 그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주면서 다시금 빛을 발했다”면서 “WYD는 새로운 문화와 사람을 만나는 것을 넘어, 오랫동안 신앙으로 이어질 소중한 인연과 깨달음을 남긴다”고 말했다.
스페인 여론조사 기관인 ‘GAD3’가 크라쿠프 WYD 이후 전 세계 100개국 이상의 젊은이 7400여 명을 대상으로 9개 언어로 한 조사를 살펴보면, ‘WYD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강화해 주었는지’라는 질문에 98%가 ‘그렇다’고 답했다. 크라쿠프 WYD 주제였던 ‘자비’에 대해서는 젊은이들의 90%가 ‘WYD를 통해 자비에 관해 더 많이 배웠다’고 했다. 또 89%는 ‘교회와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고 답했으며, 97%는 ‘WYD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강화해줬다’고 응답했다. 개인 신앙, 교회 역할, 사회와의 관계 모든 측면에서 WYD가 준 열매는 2027 서울 WYD를 개최할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전 세계 젊은이가 2016년 7월 29일 2016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WYD) 십자가의 길에서 환호하고 있다. OSV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6년 7월 30일 폴란드 크라쿠프 ‘자비의 캠퍼스’에서 열린 밤샘 기도에 참여하기 위해 순례자들과 함께 행진하고 있다. OSV
안으로 향하던 신앙, 자비로 확장되다
WYD 이후 개개인의 변화는 폴란드 젊은이들의 신앙 지형을 바꾸고 있었다. 종교를 체제의 적으로 간주하던 공산주의 치하에서도 폴란드인들은 신앙을 놓지 않았지만, 드러내지도 못했다. 안으로 더 안으로 기도하던 습관이 자연스레 내면적 신앙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그래선지 폴란드의 성당 미사에 참여해보면 어느 나라보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마주할 수 있다.
폴란드 특유의 ‘내면 신앙’ 문화 속에 그리스도의 핵심 메시지인 ‘사랑’이 밖으로 확장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개인의 신앙은 깊었을지언정 자비를 실천하는 것은 폴란드인의 과제였다. 교구 청소년사목국장 피오트르 코사코프스키 신부는 “폴란드 젊은이들의 신앙이 오랫동안 개인 내면에 집중돼왔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WYD 이후에는 다양한 공동체가 활성화되면서 많은 젊은이가 적극 참여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코사코프스키 신부는 “WYD는 청년들의 신앙 열정을 더 크게 불러일으켰다”면서 “전 세계 젊은이가 언어 장벽에도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놀라운 은사 아래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다른 이에게 전하고 싶어 했다”고 증언했다. 그가 말한 의로움은 용서할 줄 알고 약한 이들을 돌볼 줄 아는 ‘자비’였다.
크라쿠프 WYD 이후 폴란드 현지 교회와 시민사회 안에서는 작은 나눔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거리 노숙인을 위한 급식 봉사, 난민과 이주민을 위한 언어 교실, 전쟁으로 고향을 떠난 우크라이나 이웃을 돕는 자선 행사까지, 거창한 선언이나 조직보다 일상의 필요 앞에 손을 내미는 방식이다. 이 같은 변화는 단기간의 성과라기보다 WYD 이후 형성된 신앙의 방향성이 일상 속에서 드러난 사례들이다. 신앙생활은 여전히 조용했지만, 그 마음은 계속 바깥을 향했다.
코사코프스키 신부는 “젊은이들 스스로 WYD 통해 많은 선의와 사랑을 받았기에 그 경험을 다른 이들을 돕는 마음으로 이어간 것이 크라쿠프 WYD의 유산”이라며 “바오로 성인이 말씀하셨듯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과 같기에 젊은이들은 실천으로 가득 찬 믿음으로 지속해서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코사코프스키 신부는 “폴란드 교회는 그렇게 실천 교회로 나아갔으며, 이는 작은 행동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또래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부부가 서로에게 좋은 배우자가 되어 서로에게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자 움직이는 것이다. 코사코프스키 신부는 “이것이 하느님 닮은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결국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WYD를 경험한 폴란드는 계속 그 사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기사 출처 : < 가톨릭평화신문 > 2026년 2월4일자에서 옮김
대한민국인을 포함한 이 지구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에게!
위 <가톨릭 평화신문>기사를 한번 더 읽어보십시오. 무섭고 생각하기도 싫은 공산주의보다 자유 민주주의가 얼마나 뼈저리게 귀중한지를...! 수용소에서 처형당하면서까지 유대인들을 사랑하셨던 콜베 신부의 삶은...!
콜베 신부의 삶을 보면, 성자 하느님이시면서도, 세계의 모든 민족이자 인류인 『이 지구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을 사랑하시어』 이들을 구원하시고자 그 치욕스럽고 무거운 십자가 나무에, 대못 양손과 양발에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님을 빼박은 삶을 통해, 예수님을 향한 올바른 신앙과 그 올바른 신앙의 삶을 실천하는 사랑과, 하느님을 흠숭하며 믿고 사랑하기에, 이 지구보다 더 소종한 자기의 인간적인 목숨과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자기의 영혼생명을 위하여 육신 바친 순교정신을 잘 아시게 될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되 부디 여러분들도 부디 올바로 믿으십시오. 아울러, 하느님께서 사람에게만 주신 불멸의 영혼과 올바라야 할 좋은 양심과 조부모와 부모의 내리사랑, 자녀와 손자녀의 치사랑을 버리지 말고, 내면으로 진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불의가 아닌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아들과 딸들은 물론이거니와, 언젠부터인지 12제자의 한 사람인 가롯 유다와 같이 시어버려 못 먹는 음식물처럼 아주 변질되고서 외면의 삶을 살아가는 종교 지도자라 자처하는 극히 일부 사제들과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칭 뇌물이나 세상의 권력· 부귀영화, 명성에 약한 일부 중요한 판사ㆍ검사· 신문 방송 언론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하면 "하느님이 보우하시는 우리나라 만세"가 되며,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는 나라" 가 되며,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공산주의 국가ㆍ사회주의 국가(신앙의 자유ㆍ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는 국가)가 아나라,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길이 보전됩니다.
헌법 제1조 제1항에서,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입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인민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 국가란 말입니다. 덜되먹은 정치꾼이나 가짜 국회의원, 매수된 검사나 판사 등은, 왜 선린고교 8회 출신 방정환 선생이 만든 어린이날의 초등학생 나이, 선린고교 57회 후배인 제가 만든 세계중고등학생 나이만 되어도,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애국가를 알면서도 부르면서도 따르지 않습니까? 이 헌법 1조 제1항을, 개정하고, 국가의 정통성을 바꿀 생각입니까?
이제라도 한 줌 부끄럼 없는 20대 윤동주 시인의 삶을 배우고 싶고, 30대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애국자 삶을 담고 싶고, 30대 예수님(인간적으로)을 삼위일체 하느님(성자 하느님)으로 믿고, 80대 석가모니님(인간적으로)을 예수님 바로 그 다음으로 믿고, 예수님 21세기 선교전도사가 되기로 결심했으며, 여성으로 말하면 10대 17살에 순국한 유관순 누나를 존경합니다. 그럼 회갑ㆍ진갑을 다 넘긴 이재명 대통령은?
저보다 젊은 전광훈 목회자, 이낙연 전국무총리, 나경원 국회의원/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 전한길 일타강사 , 고영주 자유 민주당 대표, 전원책ㆍ 배승희ㆍ서정욱 변호사, 이진숙 방통위원장,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 이계성 시몬 전 교장, 고성국 박사, 송국건 언론인(무순)같은 소신 강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애국심이 있는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음을 위안 삼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 오는 2월15일부터 2월18일까지 4일간 설날 연휴가 시작됩니다, 이 지구상에서 80 나이 가까운 육신의 삶을 살아보니, 쉽게 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제가 대한민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하루도 공휴일이 아니던 음력 설날, 하루만 공휴일이던 음력 추석, 즉 우리나라 고유의 2대 명절인 음력 1일 1일 설날과 음력 8월15일 추석 한가위를 연휴로 할 것을 무려 16년 동안을 제언하고 주장하고 도전하여 ,이를 기어이 3일 연후로 성취한 결과를 만드 제가 기쁜 마음으로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 다가오는 이번 설날 4일 연휴를 잘 보내시기를 ! 복 많이 받으시기를! "☆
제가 "제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란 말은 거의 안합니다. 대신 '제 말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란 말은, 저를 대한민국인들을 포함한 전혀 모르는 전 세계인들에게는 말씀드립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믿을 수 있는 대상은, 또 반드시 잘 믿고 올바로 믿어야 할 대상은 부족하고 원죄 많은 우리 사람들끼리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ㆍ석가모님이실 뿐입니다. 부족하고 거짓말하는 육신 생명인 인간끼리는 최고 최선이『신뢰』 인 까닭입니다. 그래서 "제 말을 믿을 있으시겠습니까?" 가 아니고, " 제 말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 입니다. 그래서, 제 자랑이 아니라, 오늘 저를 신뢰할 수 있을 한가지 기사를 소개할 뿐입니다. 너무 오래되어서, 일제 치하 36년보다 더 긴 37전년이 되어, 대한민국인 여러 분이 지금 사서 볼 수는 없는, 1989년 2월12알자 설 특대호 기사, "옴력설 부활 호소에 16년 세월, 고고때 아버지의 날 제정, 연휴 실현되자 격려 전화 빗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989년 2월12일자 설 특대호 『선데이 서울』 이라는 주간지를 아십니까? 그 설 특대호 표지 여자 인물을 아십니까? 하하하!
그 『선데이 서울』 주간지가 저를 인터뷰한 기사가, 제가 회장으로 있는 『월드레코드』1989년 2월12일 기사를 말씀드립니다. 그기사도 찿아보기 어려우면, 오늘이라도 인터넷에서 검색어 『월드레코드』 를 친 후 월드레코드 홈페지에 들어가면, 오른쪽에 【많이 본 기사 10】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걸 클릭해가며,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걸 읽어 보고서야 저 이돈희 임마누엘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다가오는 음력설 1월1일 설날 연후가 끝나는 2월19일에 윤석열 암브로시오 자유 민주주의 ㆍ시장경제ㆍ헌법과 주요 법률 두루두루에 일반 판검사들보다 법무부 장관보다 해박한 검찰청창 출신의 윤설열 대통령으로서, 주요 외국들에도 널리널리 알려진 , 진실로 진실로 자유 민주주의 수호자의 마지막 대통령,ㆍUN을 비롯 국가간 정상 외교의 달인ㆍ애국자 대통령의 구속과 1심 재판이 있습니다.
이 재판이 헌법과 법률 그리고 법관의 올바른 양심에 따른 공정한 재판이 될지 삐뚤어진 불양심으로, 외압으로 불공정한 재판이 될지, 이재명 대통령 운명, 6월 이후로 예정되어 있는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 등, 각종 선거의 과정과 결과를 하나하나 보면서, 그 결과에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삼각한 문제의 하나인 부동산 문제, 각종 경제 문제, 교육문제, 거주 이전의 자유, 중차대한 국운과 온 국민의 자유로운 삶의 질과 평화, 올바른 신앙인의 자유 등등에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 재판 결과와 2028년 4월의 23대 국회의원 총선이 이뤄지는 경과와 그 결과를 대한민국인들을 포함한, 이 지구상의 유권자 아들과 딸들이 지켜 볼 것입니다. 간곡히 호소하고 부탁드립니다.부디부디 역사의 중죄인이 되지 마시지요. 혹여 죄인이 아닐 그 여러 사람들을 를 구속시키고서, 1년, 3년, 5년,7년,10년, 15년, 이상 등등으로 구형하거나 선고하는 것 아닐지요? 어찌하여 법을 잘 아는 판검사에게 법왜곡죄가 있어야 하고, 3심 대법원 위에 다른 4심 기관이 우리나라에만 있어야 할지요? 다른 모든 나라에는 전혀 없는 부동산종합세 같은 법처럼---. 악법들과 기관이 많지 않을지요? 몰라서 질의합니다요.
지난 1월25일부터 27일까지 아내 강 로살리아와 중국 대련(만주)을 다녀왔습니다. 대련에는 중국 정부 종교국의 허락하에, 미사봉헌 할 수 있는 대련한인성당이 있습니다. 공산주의 종주국이던 소련이, 이미 35년전 1991년 12월 이후에 사회주의 국가로 된 러시아에도, 러시아 정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가지고,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동기, 대학교 동기가 팔순 전후의 나이를 먹었습니다. 동기들 모두 ' 인간에게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노인에게 주어지는, 예측불허의 사고나 죽는 병 없이 88세 까지는 모두 살아서 만나자 ' 며 막걸리로 건배했습니다. '인간의 마자막 장인 노년세대의 삶을 행복하고 보람있게 살아가자' 다짐하는, 중노인들이 되어 있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우리나라 대한민국과 가정을 최선을 다햐 맡아 오신 65세 이상의 노인분들을 국가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 드리고 보호해 드려야 합니다. 이왕이면 노인의 날도 공휴일로 지정해주십시오.. 어린이날은 이미 오래전부터 공휴일인데, 어버이날ㆍ노인의 날은 아직도 공휴일이 아니라서는 아닙니다. 어린이들ㆍ 어비이들ㆍ 노인(어르신)들 모두 중요한 인간 3세대로 이 지구보다 귀한 사람들이니까요. 하느님과 여러분의 부모와 합력으로 「사랑」이란 글자와 아주 비슷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도와주고 보살피고 보호해 드리는 일만큼 「사람스러운 날」도 없으니 말입니다.
제가 3년 전부터 제언해 옵니다만, 인간 120세시대가 멀지 않는데, 65세 이상 노인들중에서도, 10년의 삶을 더한 75세 이상의 노인들에겐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주차장 자리가 비어 있을 때는, 함께 이용하도록 노인복지 정책 확장 차원에서라도 실천하고 배려 하여야 합니다. 이들 노인은 시력 청력 순발력 똑바로 세우는 주차능력이 감소하므로, 정부나 각지방자치단체에서 별도의 예산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운전면허증 또는 주민등록증을 소지해서 주차하시게 하면, 75세 이상 노인 여부를 간단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1963년 16살 고등학생때 아버지날을 만들고 엄청난 도전을 한 결과, 만10년이 되던 1973년 26살때 당시의 어머니날을 아버지날과 통합해서 어버이날로 변경 제정한 것입니다.1968년 21살 대학생때 노인의 날을 만들고, 국가에서는 제가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며 50살로 한국토지공사에 부장으로 재직하던 중. 29년만인 1997년에 드디어 김영삼 정부에서 10월2일을 노인의 날로 제정했습니다.
6.25 전쟁은, 유엔가입국중 자유 민주주의와 신앙이 보장된 미국을 포함한 16개 전쟁 참전국을 포함한 이탈리아 등 의료지원 56개국의 지원의 엄청난 도움과 원조로써, 소련군ㆍ 중공군ㆍ북한 인민군의 불의한 침략 전쟁을 막아냈습니다. 이러한 도움을 받았으면, 도움을 준 유엔과 낯 모르던 타국인 대한민국까지 날아와서, 불의의 전쟁을 함께 전사하며, 큰 부상당하며, 간호하며 막아준 21개 나라들의 수백만명의 은혜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를 몰라학나 배신해서는 아니됩니다. 스승과 멘토와 선배는 배신을 하지 않으나 제자와 멘티와 후배는 말할 수 없는 배신을 하고 있는 고약하고 악한 자들의 세상임을 70살 가까이 되면서 깨달았습니다...! 6.25의 불법ㆍ불의한 그들의 침략 전쟁은 70여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정전상태로 있습니다. 공휴일이던 10월24일 UN 창립일을 몇년전부터인가는 평일로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자기가 연출하는 한편의 영화요 드라마입니다.
한국에서 그러한 대우받는 UN에서도, 노인문제가 세계적으로 아주 심각해지자, 제가 44살때인 1991년에 10월 1일을 세계노인의 날로 제정하고, UN 회원인 각국에 노인의 날을 제정하기를 권장했습니다.
가톨릭의 종주국인 이탈리아 바티칸의 266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제가 71살때, 신앙적으로 필요하게 됨을 사목적 관점에서 해걸하고자,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제정하여, 7월 중에 예수님의 외조부모님의 축일이자, 복되신 성모 마리아의 친정부모인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과 가장 가까운 주일을 택하여 조부모와 노인의 날로 제정하고 이를 지내고 있습니다, 올해 2026년은 7월의 넷째 주일인 7월26을 제6차 조부모와 노인의 날로 지내면서, 가톨릭의 중요한 기념일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제가 불행히도 3살~5살로 6.25 전쟁이 시작되던 1950년부터 걸리게된 고질적 만성적 병들고 투병하고, 6.25 23살 어머니 따라 서울 중구 회현동에서 경북 의성 신산 외갓집까지 18일 동안을 등에 업히고 걸어가면서, 바가지에 밥을 얻어 먹고, 피난가고, 남의 집에 얻어 자면서 기도드렸다 합니다. 아버지 빨리 오시라고!
그후 모든 것이 변하는 70여년의 세월에도 단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을 각종 난치병ㆍ불치병 들을 여러번 수술했으며,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술이 그날 못끝나 다음 날다시 받기도 했습니다. 겉보기 보다 훨신 병약한 몸으로, 떠도는 하늘의 구름과 흐르는 강물같은 세월의 삶을 열심히 살았습니다, 14살 중학생때 아버지는 요셉, 어머니는 마리아, 저는 임마누엘이라는 세례명으로 즉, ,요셉 ㆍ 마리아ㆍ 임마누엘의 성가정 본명으로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성가정 본명으로 세례를 받는 가정은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아주 드물다 합니다. 중3 때부터 신구약 성경을 외우고 기도드리며, 여러가지 불굴의 도전을 무려 63년 동안이나 하다보니, 3개월이 지나면 팔순이 됩니다.
저의 인생 육신이 얼마 더 남았는지 알 수 없으나 국가적으로는 애국자, 신앙적으로는 예수님 21세기 도서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젊을 때는 저희 부부가 천주교노상 전교회 회원이 되어 여러 주일 교육받고서,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전교지를 주면서 전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러한 여러런 체험들에서 위 대한민국인을 포함한 모든 아들과 딸들에게 축원을 드립니다.
"예수님과 성모마리아님의 은총하에 영혼과 육신 항상 건강하십시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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